프리미어리그 유니폼 가격 50% 급등한 이유는? 사치품이 된 구조적 원인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공식 유니폼 가격이 지난 10년간 가파르게 상승하며 팬들의 부담이 임계점에 이르렀다. 세계 최고 수익 리그라는 명성 뒤에서, 유니폼은 더 이상 팬 문화의 상징이 아닌 고가 소비재로 변모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BBC가 최근 공개한 분석에 따르면, 성인용 프리미어리그 레플리카 유니폼 평균 가격은 10년 전 대비 50.7% 상승했고, 주니어용 유니폼 역시 46.8% 인상됐다. 이는 같은 기간 영국의 평균 임금 상승률과 물가 상승률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그 결과 상당수 팬들이 공식 유니폼 구매를 포기하고, 불법 복제품(일명 짝퉁)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 프리미어리그 유니폼 가격, 왜 이렇게 비싸졌나
현재 프리미어리그 20개 구단 가운데 절반은 성인용 기본 유니폼 정가를 85파운드(약 16만7000원)로 책정하고 있다. 나머지 구단들 역시 최저 가격이 60파운드에서 시작한다. 단순한 원가 상승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축구 머천다이징 시장을 전문적으로 분석해온 피터 롤만 박사의 조사에 따르면, 85파운드짜리 유니폼 한 벌의 가격 구조는 다음과 같다.
● 원단·봉제·운송 비용: 8.50파운드
● 마케팅·라이선스·유통 비용: 9.50파운드
● 부가가치세(VAT): 13.60파운드
● 제조사 수익(아디다스·나이키 등): 16.25파운드
● 소매업자(주로 구단 숍) 마진: 37.45파운드
즉, 소비자가 지불하는 금액의 가장 큰 비중은 구단 유통 구조와 소매 마진에 귀속된다. 실제 생산 원가는 전체 가격의 10% 남짓에 불과하다. 프리미어리그 유니폼이 비싸 보이는 상품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비싸질 수밖에 없는 상품이 된 이유다.
■ 가격 결정권은 누구에게 있나
프리미어리그 사무국은 구단은 제조사로부터 공급받은 레플리카 유니폼을 어떤 가격으로든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다는 리그 규정을 명확히 하고 있다. 다시 말해, 유니폼 가격은 리그 차원의 통제가 아닌 전적으로 구단의 상업적 판단에 달려 있다.
이에 대해 영국 노동당의 나이절 허들스턴 스포츠 장관은 BBC 인터뷰에서 유니폼은 구단 정체성과 팬 문화의 핵심 요소라며 가격 상승으로 인해 다음 세대 팬들이 이 연결 고리를 갖지 못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직접적인 가격 규제에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어린 팬과 가족 단위 소비자를 고려한 접근성 개선은 구단들이 반드시 고민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 제조사들이 말하는 가격 인상의 논리
유니폼 제조사들은 가격 상승의 배경으로 기술 고도화와 계약 비용 증가를 지목한다. 푸마와 엄브로에서 키트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롭 워너는 엘리트 축구 유니폼에는 상당한 연구·개발(R&D)이 투입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특히 유통업체가 떠안는 리스크를 가격 요인의 하나로 꼽았다. 팀 성적이 부진하면 대량으로 제작된 유니폼은 순식간에 재고 부담으로 전락한다. 이런 위험 요소가 결국 소비자 가격에 반영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봉제 기술의 고급화, 배지·로고 제작 공정의 정교화, 그리고 천문학적으로 상승한 키트 스폰서 계약금까지 더해지며, 브랜드들은 비용 회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 유니폼 가격 상승이 불러온 짝퉁 시장의 팽창
문제는 이 같은 가격 구조가 불법 복제품 시장의 폭발적 성장으로 직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영국 국경관리 당국은 최근 사상 최대 규모의 위조 상품을 압수하고 있다고 밝혔다. BBC는 이스트 미들랜즈 공항에서 수백 개의 소포 중 가짜 축구 유니폼 수십 벌이 적발되는 현장을 직접 취재하기도 했다.
영국 지식재산청(IPO)의 앤디 쿡-웰링 집행·정보 담당 이사는 위조 상품은 영국 경제에 최대 70억 파운드의 손실을 초래하고 있으며, 약 8만 개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월드컵 등 대형 국제 대회를 앞두고 수요가 급증할 경우, 범죄 조직의 수익도 함께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 프리미어리그, 팬과의 거리 조정이 필요한 시점
프리미어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축구 리그지만, 유니폼 가격 문제는 팬과 구단 사이의 거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정품 유니폼을 입고 응원하는 행위가 점점 사치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가격은 자유일지라도 팬과의 연결은 결코 공짜가 아니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된다. 프리미어리그와 구단들은 단기적인 수익 극대화와 장기적인 팬 기반 유지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유니폼 가격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리그가 팬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직관적인 신호다.
